요즘 드라마 〈포핸즈〉를 보다가 귀에 들어오는 음악이 있었습니다.
송강과 이준영, 극 중 강비오와 최정요가 한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네 손으로 연주하는 아주 조용한 음악입니다.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는 곡도 아니고 길이도 짧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정성스럽게 연주하는 그 음악에는 이상하게 귀를 붙잡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곡에는 조금 뜻밖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원래 피아노곡이 아닙니다.
피아노곡인 줄 알았는데 바흐의 칸타타였습니다
이 음악의 원곡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칸타타 106번,
〈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하느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라는 뜻입니다.

드라마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칸타타 전체가 아니라 노래가 시작되기 전 연주되는 약 2분 정도의 짧은 기악곡 소나티나(Sonatina)입니다.
그런데 원곡의 악기 구성이 꽤 독특합니다.
두 대의 리코더, 두 대의 비올라 다 감바, 그리고 통주저음이 함께합니다.
비올라 다 감바는 겉모습과 연주 자세가 첼로와 조금 비슷해 보이는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현악기입니다. 다리 사이에 악기를 두고 활로 연주하지만 첼로와는 별개의 악기입니다.

통주저음은 특정 악기 하나의 이름이 아닙니다. 바로크 음악에서 낮은 베이스 선율을 연주하면서 그 위에 화음을 채워 음악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연주 방식입니다. 쉽게 말하면 음악의 아래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 짧은 소나티나가 끝나면 합창이 시작됩니다.
첫 가사는 바로 작품의 제목입니다.
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
하느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
그런데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음악이 다루는 주제는 뜻밖에도 죽음입니다.
‘악투스 트라기쿠스’, 죽음을 이야기하는 음악
이 작품에는 후대에 〈Actus Tragicus〉, ‘악투스 트라기쿠스’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라틴어로 ‘비극적인 행위’ 정도의 뜻을 가진 말로, 죽음과 장례를 다루는 작품의 성격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제목이 바흐 자신이 붙인 제목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BWV 106은 정확한 작곡 연도가 확정된 작품은 아니지만 대체로 1707년 무렵, 바흐의 젊은 시절에 작곡된 것으로 봅니다.
대략 스무 살을 갓 넘긴 청년이 죽음을 이야기하는 음악을 만든 셈입니다.
장례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정확히 누구의 장례를 위해 작곡했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바흐 자신도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잃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의 죽음과 BWV 106의 작곡을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연결할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바흐가 살았던 시대에는 오늘날보다 죽음이 훨씬 일상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의학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고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으며, 감염병과 각종 질병으로 가족과 이웃을 잃는 일도 흔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만들어진 죽음에 관한 음악.
그런데 BWV 106의 시작은 무섭지도, 절망적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답습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데 왜 이렇게 부드러울까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소나티나의 소리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편성에는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바이올린이 없습니다.
두 대의 리코더와 두 대의 비올라 다 감바가 중심이 되어 아주 부드러운 음색을 만들어냅니다.
리코더에서는 마치 숨결 같은 소리가 들리고, 비올라 다 감바는 그 아래에서 조용히 움직입니다.
어느 한 악기가 앞으로 강하게 튀어나오기보다 여러 소리가 서로 얽히며 천천히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위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옵니다.
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
바흐는 여러 성경 구절과 코랄을 엮어 삶과 죽음, 그리고 신에 대한 신뢰와 구원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갑니다.
죽음을 공포와 절망으로만 그리지 않는 이 작품의 분위기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 바흐의 원곡을 들어보세요.
처음 약 2분 40초가 소나티나입니다. 이어지는 합창에서 ‘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를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xXMUpqSyJJo?si=3wrkwJgruYLnYD2x
그런데 이 음악은 어떻게 피아노곡이 되었을까
바흐가 이 작품을 쓴 지 거의 300년이 지난 뒤,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쿠르탁(György Kurtág)이 이 소나티나를 다시 바라봅니다.
쿠르탁은 1985년 이 곡을 피아노 포핸즈, 즉 한 대의 피아노를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음악으로 편곡했습니다.
원곡의 리코더도, 비올라 다 감바도 사라집니다.
남은 악기는 피아노 한 대.
대신 두 명의 연주자가 네 개의 손으로 연주합니다.
원곡에서 여러 악기가 나누어 연주하던 음악을 이제 네 개의 손이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하는 것입니다.
악기의 음색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여러 성부가 서로 만나고 얽히는 바흐 음악의 특징은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쿠르탁은 아내 마르타 쿠르탁과 한 피아노 앞에서 함께 연주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BWV 106의 소나티나를 아내와 연주하기 위해 편곡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이 편곡은 그의 아들 죄르지 쿠르탁 주니어에게 헌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손민수와 임윤찬이 함께 연주했습니다
2026년 7월,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임윤찬은 함께 무대에 올라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K.365를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앙코르에서 선택한 작품이 바로 이 음악이었습니다.
바흐의 칸타타 106번 소나티나를 쿠르탁이 편곡한 포핸즈 버전.
스승과 제자가 한 대의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음악.
🎧 임윤찬 & 손민수 – 바흐 칸타타 BWV 106 소나티나 (쿠르탁 편곡)
https://youtu.be/oPqOUB_sIfs?si=66ESXZaxfojDQCrQ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마 〈포핸즈〉에서 강비오와 최정요가 연주하는 음악으로 다시 들려옵니다.
생각해보면 참 흥미로운 여정입니다.
1700년대 초, 리코더와 비올라 다 감바의 소리로 시작했던 음악이 1985년 쿠르탁의 손을 거쳐 네 개의 손을 위한 피아노 음악이 되었고, 30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는 콘서트홀과 드라마를 통해 다시 사람들의 귀에 닿고 있습니다.
악기가 달라지고, 연주자가 달라지고, 음악을 듣는 시대도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연주자를 만날 때마다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납니다.
드라마 〈포핸즈〉에서 들었던 짧고 아름다운 피아노곡이 마음에 남았다면, 쿠르탁의 포핸즈 편곡뿐 아니라 바흐의 원곡도 함께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두 대의 리코더와 두 대의 비올라 다 감바,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듣고 나면 같은 선율이 전혀 다르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300년 전의 음악이 오늘 우리에게 다시 들리는 것.
어쩌면 그것이 오래된 예술이 살아남는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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