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개요
시대를 불문하고 문학과 예술은 사회와 정치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특히 소설가나 작가들은 시대상황을 풍자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대중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역사적 사건들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16세기 프랑스 왕의 횡포를 고발하기 위해 빅토르 위고는 희곡 ‘왕의 환락 Le Roi s'amuse'를 쓰고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꼽추인 광대가 왕을 없애려 했다는 어마어마한 스토리로 인해 평민과 귀족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오랫동안 상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이 희곡을 보고 반한 베르디가 대본가 피아베를 통해 배경이 되는 지역을 프랑스에서 이태리로, 왕 대신 존재하지도 않는 만토바 가문으로 바꾸고, 제목까지 주인공의 이름인 ‘리골레토’로 바꾸어 오페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리골레토는 원작에 담긴 강력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무대예술의 한계가 있었지만, 오페라의 극적인 효과는 사회의 비판을 또 다른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내용적 측면이 아니라, 음악적 관점에서 보면 오페라 리골레토는 테너, 바리톤, 소프라노의 주옥과 같은 아리아의 향연이다. 오페라 리골레토는 그 시대에 귀족들이 다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권력으로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남자의 욕망을 채우는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 못생기고, 장애의 몸(꼽추)이라 사람들에게 전혀 인정받지 못하지만 자기가 모시는 주인의 권력을 이용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왜곡된 열정과 자기 과시를 하는 리골레토, 리골레토의 딸로 아름답고, 세상과 단절되어 순수하기 그지없는 질다, 이렇게 세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간다.
'리골레토' 줄거리
공작의 성에서 화려한 무도회가 열리는 것으로 오페라는 시작한다. 무도회에서 공작은 여자얘기를 하고 있다. 매주 교회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인인데 뒤를 밟아 봤더니 밤마다 찾아오는 남자가 있다고 얘기한다. 무도회는 귀족들의 모임이자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으니 만토바 공작은 날이면 날마다 무도회를 쫓아다녔으리라. 이 시점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가 생각나는 것은 그의 지휘와 권력을 이용해 남자의 열정을 오로지 여자를 향한 욕망으로 집중하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서도 만토바 공작은 주변 사람들이 남편이 있어 안된다며 말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다운 체프라노 백작부인에게 눈길을 보내며 아름다운 여자들은 모두 다 좋고, 부부간의 신의를 지키는 것은 자유도, 사랑도 없다는 내용의 ‘이 여자 또 저 여자 Qusta o quella'라는 노래를 부르며 다가간다. 결국 만토바 공작에게 여자는 그저 자신의 욕망과 열정의 대상일 뿐인 것이다. 당연히 체프라노 백작은 분노하지만 만토바 공작의 어릿광대인 리골레토가 익살을 부리며 체프라노 백작을 희롱하고, 공작을 쫓아간다. 볼품 사나운 리골레토의 행동에 어이없어하며 누군가가 나타나 못생긴 꼽추인 리골레토에게 애인이 있다며 웃는다. 그 순간 만토바 공작은 다시 나타나 리골레토에게 체프라노 백작부인을 유혹하려고 하니 백작을 쫓아 달라고 하고, 리골레토는 주인의 말을 따라 체프라노 백작을 쫓아 버리다. 그때 자신의 딸이 만토바 공작에게 농락당해 분노에 찬 몬테로네 백작이 나타나 공작에게 덤볐지만 만토바 공작의 부하들에게 강제로 끌려 나가고, 리골레토는 몬테로네 백작을 비웃고, 무시한다. 이어 백작은 리골레토에게 아버지의 분함과 분노를 너도 느끼게 될 것이라며 저주하고, 리골레토는 순간 딸을 떠올리며 불안함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파라푸칠레가 따라와서 자기는 고민을 해결해 주는 사람이며, 아무도 모르게 원수를 없애줄 수 있다며 어디에 살고 알려주고 떠난다. 리골레토는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낯익은 느낌을 받아 ‘우리는 닮았다 Pari siamo'를 부른다. 리골레토는 질다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다. 자신의 처지와 외모 때문에 혹시라도 딸에게 해가 될까 봐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갈 때 빼고는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시키고 교외에 있는 집에 숨어 살게 한다. 심지어 질다는 아버지의 직업도, 이름조차도 모른다. 리골레토는 자기의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딸을 지킬 수 있고, 다른 모든 것은 위험하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질다를 나약하고 사회적 부적응자로 만들고 있었다. 자신의 외모와 그로 인한 잘못된 행동과 자격지심 때문에 사회와 단절시키는 것이 질다를 지키는 방법이고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온 리골레토는 밖에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다정하게 질다를 대한다. 그러면서 질다에게는 절대 밖에 나가지 말 것과 하녀에게는 철저하게 문단속할 것을 신신당부한다. 질다는 아버지에게 교회에서 보고 관심을 갖게 된 청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리골레토가 밖에 동태를 살피러 나간 사이 가난한 학생으로 변장한 만토바 공작이 숨어 들어와 질다에게 ‘사랑은 마음의 태양, 삶은 곧 사랑이라 il sol dell'anima, la vita amore’라는 사랑을 노래하자 질다는 교회에서 본 그 청년임을 확인하고 사랑을 확신하게 되어 이름을 묻자 만토바 공작은 구알티에르 말데(Gualtier Maldè)라고 거짓 이름을 알려준다. 아버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급히 서로 사랑의 서약을 하고 공작은 사라진다. 질다는 그의 이름을 되뇌며 그에 대한 사랑을 되새긴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그 유명한 아리아 ‘그리운 이름이여 Caro nome'이다. 사람은 좋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과 건강한 심리를 형성해 나간다. 아무리 아버지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았다고 하더라도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면서 늘 외로움과 막연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던 질다가 자신을 향해 사랑의 눈빛과 마음을 전하는 멋진 청년에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여자로서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다. 분노에 차 있는 체프라노 백작과 공작의 신하들은 리골레토를 골탕 먹이기 위해 질다를 납치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질다가 리골레토의 애인인 줄 알고 있었다. 그들의 계략을 리골레토는 체프라노 백작부인을 찾는 것인 줄 알고 재미로 함께 가담하여 재주를 넘고 있어 정신이 팔린 사이에 그들은 질다를 납치한다. 이상한 낌새를 차린 리골레토는 질다가 납치당한 사실을 알게 되고, 몬테로네 백작의 저주가 생각나 극도로 불안해한다. 다음날 아침 신하들이 만토바 공작에게 리골레토의 애인을 납치해 왔다고 하여 보니, 그 여인이 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며 질다가 잡혀있는 방으로 간다. 리골레토는 만토바 궁으로 애써 아무 일이 없는 듯 와 동태를 살핀 뒤 상황을 파악하고는 질다를 찾아 헤매고 그를 비웃고 방해하는 신하들에게 질다가 자신의 딸임을 밝히게 된다. 그들은 놀라긴 했지만 질다를 찾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리골레토를 약 올리며 방해한다. 화가 난 리골레토가 분노에 가득 차, 반면 간절한 마음으로 딸을 돌려달라며 부르는 노래가 ‘가신들, 천벌을 받을 놈들 Cortigiani, vil razza dannata’이다. 이 노래 속에는 리골레토의 콤플렉스, 사회에 대한 분노, 자신이 저지른 죄, 딸을 사랑하는 마음, 딸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하고, 절박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어 더욱 극적이다. 그러던 중 질다가 갇혀있던 방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고, 리골레토는 질다를 위로하고 다독이지만, 분노하면서 몬테로네 백작의 저주가 만토바 공작에게 돌아가게 하겠노라 복수를 결심한다. 리골레토는 여전히 만토바 공작의 사랑을 믿는 질다를 만토바 공작의 정체를 보여주기 위해 스파라푸칠레의 집이 있는 강변의 여관으로 데려간다. 그 안에서 만토바 공작은 '여자의 마음은 la donna e mobile'를 부르며 스파라푸칠레의 동생인 막달레나를 유혹한다. 그 모습을 본 질다는 상처를 받고, 절망에 빠져 고통스러워한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나의 딸 Bella figlia dell'amore'라고 시작하는 4중창의 노래는 또 다른 여자를 유혹하는 만토바공작, 그의 수작을 즐기며 끼를 부리는 막달레나, 딸을 위로하고, 공작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리골레토, 사랑의 배신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질다가 함께 부르는 노래로 이 상황에 대한 네 사람의 각각 다른 감정을 놀랍도록 조화를 이루게 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상황과 입장에 따라 겪는 다양한 감정이 존재한다. 누구는 아무 생각 없이 자기의 감정에만 충실하여 말하고, 행동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심리의 상처를 주기도 하며 또 다른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는 관계만이 진정한 사랑이 존재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 리골레토는 질다에게 남자 옷을 입히고 곧 뒤따라 갈 테니 당장 오늘 밤에 베로나로 떠날 것을 명한다. 그전에 리골레토는 스파라푸칠레에게 만토바 공작을 없애 줄 것을 부탁했고,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다짐을 받는다. 만토바공작은 여관에서 방으로 자러 가고, 공작을 잊지 못한 질다는 남장을 한 채 여관 근처로 다시 와 기웃거리며 여관 안의 동태를 살핀다. 막달레나는 만토바 공작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스파라푸칠레가 리골레토에게 청부 살해 요청을 받은 것을 알고, 공작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동생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여관으로 처음 들어오는 손님을 없앤 후 그를 만토바 공작의 것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이 사실을 엿들은 질다는 자기가 만토바 공작을 대신하는 희생양이 스스로 되기로 결심하고, 여관으로 들어간다. 여자가 사랑이라고 확신을 하게 되면 설령 그 사랑이 거짓으로 밝혀져도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분노와 미련이 뒤섞인 마음으로 확인 또 확인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 과정 중에도 그 남자에게 자신은 진정한 사랑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는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에 나오는 돈나 엘비라도 비슷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여자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희생으로 자기의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질다는 어리석게도 자기의 목숨까지 내놓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여관에 들어서자마자 스파라푸칠레의 능수능란한 솜씨에 질다는 쓰러지고, 질다를 자루에 넣어 리골레토에게 만토바 공작이라고 하며 건네준다. 리골레토는 기쁜 마음으로 자루를 둘러메고 강으로 돌아서는 그때에 여관에서 만토바 공작이 부르는 ‘여자의 마음은 la donna e mobile'의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너무 놀라서 자루를 풀어본다. 그 속에는 죽어가는 리골레토의 딸 질다가 들어 있는 게 아닌가? 리골레토가 불안해하던 일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것은 재앙이라고 외치며 리골레토의 품에서 질다의 숨은 멎고, 리골레토는 절규하며 막이 내린다. 남자의 진정한 사랑은 무한한 책임감이다. 리골레토의 아내, 질다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오페라에는 없다. 리골레토는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딸 질다에게 투영하여 무한한 책임감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자신의 처지와 상황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딸을, 딸에게는 자신을 숨기기에 급급하여 그 사랑이 왜곡되었다. 그 부작용은 질다가 짊어지게 되었고, 모든 상처를 질다가 끌어안고 희생하게 된 것이다. 인간관계도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자라는 과정에서 부모에게 올바른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나누는 연습도 해야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도 알게 되고, 상처를 극복하는 법도 배우면서 살아야 건강한 정신과 마음을 갖게 된다. 사랑은 주는 것이고, 그 속에는 믿음과 책임감과 지지와 인정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마음을 갖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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